2026 (76) – 나는 죽고 주가 살고
본문
2026 (76) – 나는 죽고 주가 살고
(고린도전서 21:10~17)
-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오늘 말씀은 '우리 주' 라고 쓰여 있습니다.
'나의 주', '너의 주'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주라고 쓰고 계시는 거죠.
우리 모두의 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권하시기를,
우리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어로는 'united in mind and thought' 입니다.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나누어지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왜 각자의 생각과 마음이 나누어지는지를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바울에게 세례 받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볼로의 생각과 가르침이 다르고
게바의 생각과 가르침이 다르며
바울의 생각과 가르침이 다르다고 서로 논쟁하고 있는 것이죠.
바울은 이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보낸 것은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전하려 함이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보내심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고
아볼로가 게바가 그리고 바울 자신이 보이는 이 안타까운 상황을 어찌할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례에 집중하게 되면
그 세례를 준 사람에게 마음을 집중하고 세례자에 따라 자신의 삶이 이끌려 가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는 거죠.
하지만 복음이 그 중심에 이르게 되면
그 복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또 그 복음은 누구에게서부터 왔는가에 집중하게 될 수 있는 거죠.
복음을 전한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받은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고
그 복음이 누구에게서부터 왔느냐. 곧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왔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세례가 아니라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마음은,
공동체 안에서 리더가 섬기는 이유는 숨겨진 대상자, 곧 복음 전파의 대상자를 향한 것이며,
전도 대상자의 신앙 성장이 그 초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례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오늘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인 나는 죽고 복음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주가 살고, 나는 없고 주가 계신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순이냐, 어느 순장의 다락방이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죠.
신실하냐 신실하지 못하냐에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일 뿐입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어느 순이냐 어느 순장이냐로 나누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성도냐? 어느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냐 등
공동체의 소속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 하나의 생각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 하나의 생각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복음을 말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마음이 하나로 합쳐져야 만 한다는 거죠
오늘 하루 저의 삶이
'내가 누구냐?', '상대는 누구냐?',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 '그의 생각은 무엇인가?' 로 나뉘지 않고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인가?',
'나로 인해 그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가?' 라는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매 순간 상대가 누가 되든
복음 전파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지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