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2) – 결국 스스로 믿음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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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2) – 결국 스스로 믿음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역대하24:17~27)
l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l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l 요아스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니
여호야다는 훌륭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아스왕은 그를 존경해서 비록 자신이 왕이었지만
여호야다가 왕에게 조언하는 일들을 빠짐없이 행했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이 남유다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나라로 잘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고 난 이후 요아스 왕은 급격하게 변절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왕이 되게 했던 그리고 자신을 현명한 왕으로 이끌었던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는 악행과 우상을 섬기는 왕으로 급격하게 변절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뭘까요?
훌륭한 자 여호야다가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켰지만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믿음과 신실함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 요아스의 잘못일까, 여호야다의 잘못일까 “ 라는 묵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요아스가 여호야다에게 받은 모든 지혜와 믿음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가장 크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제대로 믿음의 길로 인도한 것이 맞는가 ‘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여호야다는 요아스의 뒤를 보아주고 훌륭한 군주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호야다의 죽음 이후 급격한 몰락에 여호야다의 지분이 전혀 없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자신이 왕인지 여호야다가 왕인지 혼란스러움, 질투,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 라는
요아스 왕의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여호야다는 그렇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를 추종하는 많은 신하들이
요아스보다 여호야다를 더 무서워하고 더 따르는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면
요하스 왕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여호야다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힘든 존재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이 상황을 제 상황으로 한번 가져와 봅니다.
제가 한 가정의 제사장이고 다락방의 순장입니다.
제 자녀가 또는 제 다락방 순원들이 믿음의 사람들로 자라나게 하게 하기 위해서
저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제가 믿음의 길을 잘 보여주고 제가 모범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하며 선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 그들이 믿음 성장하는데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일까? “ 라는 생각이 든 거죠.
저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믿음의 본이 되는 아버지라는 순장이라는 그림자 안에서,
과연 그게 그들의 믿음 성장에 좋기만한 것인가? 독이 되는 부분은 없는가? 라는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믿음을 굳건하게 가져간다고 하는 것이 바로 내 자녀들과 순원들이
하나님과의 단단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할 때 나의 생각과 나의 원칙, 내가 만난 하나님을 내 자녀에게 강요하고,
그것이 그들의 습관이 되도록 강제하는 것은
결국 내 자녀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소 느리고, 다소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예배 믿음 기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내 자녀가 “ 스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 보이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믿음의 뒷모습은 보여주되
선택과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소통하도록
최대한 자율에 맡기는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락방 순원들의 믿음 성장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루
나의 믿음 뿐만 아니라 내 아내의 믿음 내 자녀의 믿음 동역자들과 순원들의 믿음에
내가 깊이 관여하려 하기보다
내 스스로가 믿음의 본을 보이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믿음의 길과 자신의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매순간 돕는 삶을 살겠다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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