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8) – 믿음은 시간의 변수가 아닙니다
본문
2026 (18) – 믿음은 시간의 변수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2:13~25)
-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46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3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이 더는 아닌 것이지요.
46년 동안 지어진 눈에 보이는 거룩한 성전,
하지만 물질을 위한 장사로 더럽혀진 성전은 오늘 예수님이라는 새로운 성전과 대비되어 보입니다.
성대하게 유월절을 지키는 바리새인들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 대비되어 보이는 순간입니다.
성전에 대한 기준을 판단하는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서 유월절 제물로 바쳐져야 할 흠이 없는 제물이란,
장사를 위해 악용되고 있는 흠 없는 짐승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흠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모습이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교회, 우리들의 믿음도 이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으로 보이기에 구색을 잘 갖춘 화려해 보이는 믿음,
하지만 그 마음의 중심에 내가, 그리고 세상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믿음과,
단순하지만 중심이 하나님께 드려진 믿음을 비교할 때 말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바리새인들의 유월절 모습을 보면서
지금 저의 신앙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경건한 모습을 보이는 데 유월절 제사의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주인공이 아니셨던 것이지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 그런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런 신앙이었습니다.
지금 저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습관적으로 믿음의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경건한 모습은 있으나 경건한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 신앙의 자세가 없는지 돌아봅니다.
저의 QT 말씀 묵상이 그러하지는 않는지?
저의 예배가 그러한 것은 아닌지? 저의 나눔이 그러한 것은 아닌지? 저의 기도가 그러한 것은 아닌지?
깊이 묵상해 보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오늘 말씀입니다.
묵상 하는 중에 제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은
저의 기도, 큐티, 예배, 나눔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주인공이신 적도 있긴 하지만
제가 주인공이었던 적이 훨씬 더 많았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진짜 믿음은 얼마나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했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등으로 귀결되는
시간의 변수가 아니라,
46년 동안이 아니라 3일 만에 진짜 성전을 지으신 예수님처럼
마음의 중심이동이 변수라는 마음으로 매순간을 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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