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 하나님 앞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본문
2026 (8) – 하나님 앞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창세기 10:1~32)
l 함의 자손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A mighty warrior on the earth)
l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 (A mighty hunter before the Lord) 이 되었으므로
l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A mighty warrior on the earth. A mighty hunter before the Lord
지구 상에서 가장 용감한 전사요, 하나님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었다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용감한 전사 라는 첫번째 구절은 영광스러운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구절은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 니므롯이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양꾼이 되었으므로 (A mighty hunter before the Lord) “ 이 말은
여호와에 의해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 즉 여호와 앞에서 니므롯은 용감한 사냥꾼이다 라는 말이 됩니다.
“ 여호와께서 니므롯 에게 용감한 사냥꾼의 심장과 능력을 주셨기에 그렇게 되었다 “ 라는 말로 해석되기보다
“ 니므롯 스스로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 “ 라는 말로 들립니다.
“ 속담에 이르기를 “ 이라는 말의 뜻은, “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말로는 “ 이라고 해석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높임을 받을 때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다 라고 표현한다는 거죠.
근데 거기에 수식어가 더 붙습니다. “ 여호와 앞의 니므롯 같이 “ 입니다.
용감한 사냥꾼 앞의 수식어가 <여호와>가 아니라 <니므롯> 이 붙습니다.
여호와와 상관없이 스스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던 니므롯 처럼
이 사냥꾼도 스스로 능력을 증명한 니므롯과 같은 용감한 사냥꾼이다 라는 속담이 생긴 거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그 힘과 능력을 발휘할 상황을 만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어떤 누구도 사람들에게 용감한 사냥꾼이 되거나 그런 자의 모습으로 보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냥꾼 니므롯은 여호와의 도움으로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 여호와의 도움을 힘입지 않고도 나처럼 용감한 사냥꾼이 될 수 있다 “ 라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물질과 힘에 의지하는 상황이 과거 속담으로 전해지던 상황이 너무나도 흡사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 라고 비아냥 거립니다.
“ 하나님 없이도 내가 가진 물질과 능력으로,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수 있다 “ 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미혹되었고 있지 않습니까?
함의 자손 니므롯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처럼 되게 하려 하는 것처럼,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 그리스도들이
사단이 주는 물질과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니므롯 처럼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들에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저를 봅니다.
기도에 의지하기보다, 보이는 물질과 권세에 의지하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제 마음 안에 세상이 주는 것들에 의지했던 부끄러운 삶을 회개합니다.
세상 권세 모든 능력 모든 물질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지 않고는 단 한 가지도 제 것이 될 수 없음을 주님 앞에 고백하며
오늘 하루 철저하게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아가는 겸손한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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